법무법인 휘명 고영남 변호사
스물두 해 동안 같은 자리에서 약국을 운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문을 열고 손님을 맞으며 쌓은 것은 매출만이 아니었습니다. 단골과의 신뢰, 거래처와의 관계, 약국을 꾸려 온 경험과 영업 노하우도 함께 쌓였습니다. 임대차가 끝나 가게를 떠나야 할 때, 그동안 일군 가치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대가를 받는 것이 권리금입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올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월세를 건물주가 요구한다면, 그 가치는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대법원 2026년 7월 16일 선고 2026다201337(본소), 2026다201338(반소) 판결은 이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이 사건의 약사는 건물주가 계약 갱신을 거절하자 약국을 이어받을 신규임차인을 찾아 권리금 22억 원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기존 임대차 조건은 보증금 1억 원, 월세 600만 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건물주는 신규임차인에게 보증금 5억 원과 월세 2,000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기존 임차인에게 제시한 월세는 이보다도 높은 2,400만 원이었습니다. 건물주는 어느 쪽과도 조건을 조정할 여지를 두지 않았고, 결국 신규임차인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물러났습니다. 권리금 계약도 해제되었습니다.
건물주에게는 자기 건물의 임대 조건을 정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권한이 임차인이 오랫동안 쌓아 온 영업의 가치를 무력화하는 데까지 제한 없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권리금에는 상가의 위치가 주는 이점뿐 아니라 임차인이 만들어 낸 단골, 거래처, 신용, 영업 노하우가 포함됩니다. 문제는 이 가치를 넘겨받을 사람이 있어도 건물주가 새 임대차계약에 협조하지 않으면 권리금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법 제10조의4 제1항은 임대차가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종료할 때까지 일정한 방해 행위를 금지합니다.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에게 건물주가 직접 권리금을 요구하거나 받는 행위, 신규임차인이 기존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합니다. 주변 시세 등에 비추어 현저히 고액의 차임과 보증금을 요구하거나, 그 밖에 정당한 사유 없이 신규임차인과의 계약 체결을 거절하는 행위도 금지됩니다. 이런 행위로 임차인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건물주는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그중 ‘현저히 고액의 차임과 보증금을 요구하는 행위’가 쟁점이었습니다.
계약을 거절한다는 말은 꼭 “안 된다”는 한마디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내놓고 조금도 조정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월세를 올려 불렀다는 형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요구가 사실상 신규임차인을 물러나게 해 기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막은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다만 월세가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위법한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정당한 인상과 권리금 회수방해를 가르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이 사건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금액의 차이입니다. 월세 600만 원과 2,000만 원을 비교하면 요구한 월세는 기존의 약 333%에 이릅니다. 보증금과 월세를 함께 보는 환산보증금으로 계산하면 차이는 더 커집니다. 환산보증금은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한 금액입니다. 기존 조건은 1억 원에 600만 원의 100배를 더한 7억 원이지만, 신규임차인에게 요구한 조건은 5억 원에 2,000만 원의 100배를 더한 25억 원입니다. 기존의 약 357%가 되는 셈입니다.
대법원은 이 차이만으로 결론을 확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존 조건과의 격차를 보면 현저히 고액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주변 상가의 월세가 그만큼 올랐다고 볼 만한 사정도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단순히 “월세를 몇 배 올렸으니 위법하다”는 공식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기존에 받던 금액과 새로 요구하는 금액의 차이가 판단에서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는 점은 분명해졌습니다.
대법원은 판단에 필요한 사정도 폭넓게 제시했습니다. 법 조문에 적힌 조세, 공과금, 주변 상가의 차임과 보증금 수준뿐 아니라, 기존 임차인의 조건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상가건물의 시세와 적정 차임은 얼마인지, 해당 지역과 업종의 거래관행 및 당시 경제상황은 어떠한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차인에게는 기존 계약서와 건물주가 제시한 새로운 조건이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건물주에게도 인상의 이유를 객관적인 자료로 설명할 필요가 생깁니다.
원심과 대법원이 가장 다르게 본 부분은 약국의 매출이었습니다. 원심은 이 약국의 월평균 조제료 수입이 1억 원을 넘는다는 사정에 주목했습니다. 그 정도 수입이라면 월세 2,000만 원도 감당할 수 있으므로 과도한 요구라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임차인이 월세를 낼 능력이 있다는 것과 건물주가 요구한 월세가 객관적으로 적정하다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대법원은 그 매출에 상가의 위치뿐 아니라 거래처, 신용, 영업 노하우 등 임차인의 노력으로 형성된 인적 요인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법원 감정 결과에서도 이 상가의 바닥권리금, 이른바 자리값은 0원인 반면 영업권리금은 20억 1,500만 원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약국 가치의 대부분은 건물의 위치보다 임차인이 오랫동안 일군 영업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 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월세를 대폭 올린 조치는 객관적 정당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권리금 22억 원이라는 금액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액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임차인이 지나친 권리금을 받으려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의 감정 결과에 따르면 약국 권리금은 통상 월평균 조제료의 20개월 수준에서 형성되었고, 대법원은 이에 비추어 약정한 22억 원이 합리적인 금액이라고 보았습니다. 임차인이 과도한 권리금을 받으려고 자금 능력이 없는 신규임차인을 데려왔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권리금과 차임 모두 실제 영업의 가치와 거래 사정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또 다른 쟁점은 적정 월세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였습니다. 원심은 건물주가 요구한 금액이 현저히 고액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차인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요구액이 기존 조건에 비해 현저히 높다고 볼 여지가 있다면 감정 등을 통해 적정 차임을 확인한 다음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적정 차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심리를 끝내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그렇다고 증명책임이 건물주에게 넘어간 것은 아닙니다. 요구한 차임이 현저히 고액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임차인이 증명해야 하고, 모든 사건에서 감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사건처럼 상당한 격차와 관련 사정이 드러난 경우에는 감정 등을 통해 실제로 적정한 차임이 얼마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차인이 차임 감정을 적극적으로 신청하고, 권리금 감정에서도 바닥권리금과 영업권리금을 구분해 자신의 노력이 만든 가치를 설명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판결의 의미를 읽을 때는 결론의 범위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대법원은 임차인에게 곧바로 22억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임차인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환송심에서 감정 등 추가 심리를 거쳐 손해배상 책임과 액수를 다시 판단해야 합니다. ‘현저히 고액일 여지가 많다’는 판단과 최종적인 배상 확정은 구별해야 합니다.
건물을 비워 주는 문제 역시 별개입니다. 이 사건에서 건물주의 건물인도 청구인 본소는 그대로 인정되었습니다. 권리금 회수방해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다투고 있다고 해서 그 배상을 받을 때까지 가게를 비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명도 의무와 손해배상청구는 각각 진행해야 합니다. 임차인의 권리금 보호가 임대차 종료 후 점유를 계속할 권리까지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영업했다는 이유로 권리금 보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약국의 영업 기간은 22년이었습니다. 계약갱신요구권의 최대 기간인 10년이 지났더라도 권리금 회수기회는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미 2019년 5월 16일 선고 2017다225312, 225329 판결에서 이 점을 확인했습니다. 임대차를 계속할 수 있는 권리와, 임대차가 끝날 때 영업의 가치를 회수할 기회를 보호받는 권리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손해배상의 액수와 기간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 제3항에 따라 배상액은 신규임차인이 지급하기로 한 권리금과 임대차 종료 당시의 권리금 중 낮은 금액을 넘을 수 없습니다. 약정한 권리금이 그대로 배상액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같은 조 제4항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임대차 종료일부터 3년입니다.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기한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임차인에게 이 판결이 주는 실무적인 의미는 기록의 중요성입니다. 임대차가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신규임차인을 주선하는 과정, 건물주가 제시한 보증금과 월세, 그 조건을 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문서로 남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계약과 새 조건을 비교할 때는 월세만이 아니라 환산보증금도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주변 시세와 적정 차임, 권리금의 구성에 관한 자료를 준비하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건물주도 월세 인상의 근거를 살펴야 합니다. 주변 시세가 얼마나 변했는지, 해당 건물의 적정 차임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협상 과정에서 조건을 조정할 여지를 보였다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임차인의 매출이 높다는 사정만으로 대폭 인상이 정당화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그 매출이 임차인의 신용과 노하우, 거래관계에서 비롯된 경우라면 이를 건물의 가치와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권리금은 가게를 떠나는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영업의 가치입니다. 그 안에는 건물의 위치가 주는 이점도 있지만, 오랜 시간 임차인이 직접 쌓아 온 결과도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건물주가 임대 조건을 정할 때 그 가치를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 과도한 조건 제시가 권리금 회수방해가 되는지를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임차인에게는 자신의 노력으로 형성된 가치를 증명할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고, 건물주에게는 요구하는 금액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계약이 끝나기 전에 주고받은 제안과 답변을 충실히 남기는 일이, 결국 양쪽 모두의 권리와 책임을 분명하게 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법무법인 휘명 · 고영남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민사법 전문변호사 · 형사법 전문변호사. 상담 안내: lawyerko.co.kr
※ 이 글은 대법원 2026년 7월 16일 선고 2026다201337(본소), 2026다201338(반소) 판결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